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명을 찾아서 (문단 편집) === 조선 === 조선은 [[조선총독부]]가 통치한다. 그 구조나 지휘 체계는 실제 역사의 [[총독부]]와 같으며 현역 [[육군|육]]·[[해군|해]]·[[공군]][* 실제 역사에서는 예비역 군 장성 출신 [[총독]]도 있었지만, 이 책의 세계에서는 오직 현역 장성만이 총독이 된다. 실제 역사보다 조선에 대한 통제가 강화된 것.][* 실제 역사의 구 [[일본군]]에는 독립적인 공군이라 할 만한 조직은 없었고, 항공대를 통합한 '항공총군'은 패망 직전에 형성되었으나 육군 휘하의 부대였다. 고로 공군이 독자적 군벌이라는 설정은 역사 비틀기. 애시당초 공군 기념일도 [[노몬한 전투]] 기념일이다. (여기선 노몬한 전투에서 일본군이 러시아 항공대를 격파한 걸로 나온다.) 치열한 육해군 파벌 대립이라는 정치 환경에서 '공군'이라는 제3세력을 만드는 것이 어찌 가능했을지는 의문이다. 다만 여기서는 [[항공모함]] 함재기를 중심으로 발달한 공군이 [[1947년]] 2월 창설 되어 사실상 해군의 멀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풀이된다.] [[대장(계급)|대장]]만이 총독이 될 수 있으며 일본 정부 내의 서열로는 [[수상]]에 이어 2위. [[조선 총독]]은 일종의 [[내각총리대신|수상]]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는 모양이다.[* [[우가키 가즈시게]] 같은 인물은 여기서도 총독직을 수행하며, (도조에게 배신당한) 수상으로도 등장한다. 창씨 개명도 [[1940년]] [[미나미 지로]] 때가 아닌 [[1929년]](기사년) 우가키 총독 때 진행 된 것으로 설명된다. 실제 역사에서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로 사망했던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도 여기선 총독(1924년 3월 ~ 1928년)으로 등장한다. 작중에서 언급되는 [[이봉창]]의 의거 실패처럼 윤봉길도 실패한 모양이다. ][* 황도파 극우 인사인 [[아라키 사다오]]의 경우 1928년 8월 총독으로 등장하나, 1929년에 우가키로 교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시라카와 시대에 '큰 불편을 주지 않는 <국어(일본어) 상용>'은 아라키 시대의 <국체 명징>으로 더욱 격상되며, 앞서 보았듯이 우가키의 때가 되면 [[창씨개명]]까지 이뤄진다. 즉 일본의 "급격한 동화정책"은 1926년 쇼우와 시대를 전후해서 급진적으로 시행되었다.] 그 아래에 [[대만총독부]] 총독[* 사실 이 자리는 문민 출신 인물이 앉았지만 소설 속에서는 바뀐 모양이다.] [[관동청]] 장관(일본령 [[관동주]])[* [[화태청]](일본령 [[가라후토]])은 작중 언급이 없다.]역시 모두 군인 출신만 될 수 있다. [[청와대]] 자리에 실제로 위치했던 총독관저 '지신다이(慈信臺, 자신대)'[* 이 이름은 온전히 작가의 창작이며, 실제 총독 관저는 원래는 남산에 있다가 [[미나미 지로]] 총독 때에야 이곳으로 이전된다. 이후 총독 관저는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관저가 되어 [[경복궁]]의 '경'과 [[신무문]]의 '무'를 딴 [[경무대]]로 [[이승만]] 정권 내내 불리다가, [[4.19 혁명]] 후 [[윤보선]] 대통령 때인 [[1960년]] '''[[청와대]]'''로 이름이 개명되었다. 오늘날의 청와대가 지어진 건 [[노태우]] 대통령 때로, [[전두환]] 때까지 청와대로 사용되던 이 총독 관저는 [[김영삼]] 대통령 때 철거된다.]가 아직도 남아 있다. 행정 구역은 현실 역사상 [[일제강점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인구 300여만 명의 [[경성부|게이조우(京城)]]는 조선 제1의 도시이며 [[도쿄]]의 4분의 1 크기라고 나온다. 그리고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제25회 하계 올림픽]]이 [[1992년]] 게이조우에서 열릴 예정이다.[* 소설에서 보면 경쟁자는 '''[[바르셀로나]].'''] 이것은 [[1988 서울 올림픽]]을 대놓고 패러디한 것이다. 그 때문에 당시 88 올림픽 개최를 일부 진영에서 어떻게 조롱했는지 이 소설의 전반에 깔려 있다. 여러모로 보았을 때 [[서울확장론|경성 자체가 강남이나]] [[경인통합|인천-부천 쪽으로 팽창된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언급되는 건 일제강점기의 서울 규모와 흡사한 (구) 4대문 안과 [[마포구]], [[용산구]], [[영등포]] 정도이다.[* 실제 역사에서 [[서울특별시/강남|강남]] 등이 서울에 편입되어 개발된 배경부터가 [[1960년대]] 이후 급속도로 진행한 서울의 도시 팽창으로 인한 [[강북]] 구도심의 밀집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헬조선|조선의 인구는 약 5천만 명이며 상류층이 40여만 명, 중산층이 900만 명 정도로 그야말로 전형적인 20 대 80 사회 그 자체다.]] 조선 인구의 절반 이상이 소작농으로 분류될 정도. 일본 정부에서는 공해산업을 조선으로 유치하고[* 그래서 흥남 공업단지 옆에선 사람 살이 썩고 [[기형아]]가 나오고, 산성비가 내린다는 연구결과가 나와도 합성수지(플라스틱) 접시에 받은 연구란 억지로 묵살당한다. 강가와(한강) 물은 물고기가 한마리도 살수 없는 오염된 물이 흐른다.] [[개마고원]] 등의 오지에 매립지를 만들며, 신생활 운동이라는 명목으로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주인공인 히데요의 회상에서는 지하철 역을 짓기 위해 '''[[숭례문]]이 헐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외에도 원산의 빈민가 개발을 둘러싸고 공무원과 용역들이 빈민들을 물리력을 동원해 강제로 주택을 철거, 퇴거시키는 모습이 묘사된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천수만 간척을 벌인다. 참고로 내지(일본 본토)의 인구는 1억 1천만여 명. 극장에서는 국가 연주와 [[대한뉴스|제국 소식 상영]]이 이루어진다. 완전한 통제 국가로 주민등록증격인 황국신민증(皇國臣民證)을 모든 국민에게 발급한다. [[주민등록번호]]처럼 황국신민번호도 존재한다.[* 주인공 기노시다는 231018-********으로, 소화 23년([[1948년]])생이다. 즉 원래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있어야 했던 해랑 같다는 것.] [[국가정보원]] 격인 [[수상]] 직속의 [[중앙정보부|국가]][[국가안전기획부|보안처]]는 정부 기관 중 가장 권력이 강하며 사회 각계에 손을 뻗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작중에서 히데요의 미국인 사업 파트너 에릭 앤더슨이 일본의 정부 기관이 일개 회사의 합작 투자에 간섭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작중에 길게 묘사되는 미국 회사의 투자 이야기는 노골적으로 미국의 동맹국 경제에 대한 간섭을 조롱한다는 평론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 앞구절에서 상술된 구절인 한국의 [[정경유착]]을 풍자하는 목적에 초점을 맞췄을 가능성이 더 높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아직도 남아있는데(소설 속에서는 출간 시점에 잘못 알려진대로 '[[정신대]]'로 표기) 조선인 [[기생]]들이 빚을 더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만주국 전선에 주둔한 일본군 부대에 위안부로 팔려간다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의 탄압 및 [[중국 국민당]]의 외면을 받고[* 실제 역사에서 국민당 정부가 임정을 지원하게 된 계기는 [[중일전쟁]]으로 인해 국민당 정부가 임정과의 협력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가상 역사에선 일본과의 전쟁이 일어나질 않았을 뿐더러, [[윤봉길]] 의사의 의거도 성공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봉창만이 실제 암살기도보다 1년 빨리 [[1931년]] 천황 저격에 실패한 것으로 언급된다. 소설 속 가상의 <뉴스월드> 기사 역시 국민당은 임시정부를 계속 지원한 주체이나, 이제 중공 문제를 위해 일제와 협력할 상황이므로 임정의 앞날이 더욱 어두워질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973년]] 상해 [[손중산|(손)중산]] 공항의 일본 제국 항공사 테러 미수사건 당시 수뇌부가 체포되어 크게 몰락했다. 더욱이 조선에서 넘어오는 망명객도 1963년을 마지막으로 끊겨 평생 조선땅을 밟아본적도 없는 조선인 2세들의 이름뿐인 단체로 전락한 상황. 남은 인원은 테러 활동을 접고 사라진 [[조선어]]를 보존하기 위해 조선어 사전 편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상해([[상하이]])는 [[국제 연맹]]에 의해 실제 역사의 [[단치히 자유시]]처럼 국제연맹이 공인한 자유시가 되는데, 이 덕분에 임시정부는 실제 역사처럼 [[프랑스]] 조계에서 명맥을 유지한다. [[고종(대한제국)|고종]]의 사망이 기미년보다 2년 빠른 [[정사]]년([[1917년]] 6월)에 있었기 때문에, "[[3.1운동|정사년 만세운동]]"으로 세워진 임시정부는 소설 속에서 황혼어린 70주년을 맞는 셈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